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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80년 9월 25일 함경북도 김책시 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재가를 하시어 두 살 아래인 남동생과 저는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북한에서 인민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96년에 할머니마저 돌아가셔서 신혼의 삼촌과 지내다 눈치가 보여 어머니가 계신다는 신기원을 찾아갔습니다. 할머니로부터 들은 재가한 어머니의 인상이 좋지 않아 망설였지만 당장 의지할 곳이 없으니 할 수 없었습니다. 예상보다 반갑게 맞아 주어 함께 몇 달을 지냈으나 94년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의붓 동생들이 굶게 되니 새 아버지가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나온 후 저와 동생은 꽃제비(방랑자) 생활을 하며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죽는 사람도 많이 보았고, 잡히면 구두발로 차고 때리는데 너무 아팠습니다. 저와 동생은 꽃제비들을 단속하는 사람들에게 잡혀 혜산에 있는 927수용소에 갇혔다가 한 밤중에 도망쳐 나온 후 그 생활을 청산하기로 했습니다. 농촌으로 가서 일을 도와주고 감자를 얻어먹고 지내다 그곳의 청년들에게서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국에 가면 조선족도 있고 선교사들도 있는데 먹을 것은 물론, 옷도 주고 목욕도 시켜 준다고 하여 귀가 솔깃해 중국에 가기로 마음먹고 백암역에 도착한 그 날은 97년 8월 1일로 동생의 생일이었습니다. 있는 돈을 털어 동생과 함께 밥을 사먹고 둘이서 압록강을 건너 벌목장이 있는 '송강하'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아무리 굶어 죽어도 중국으로 가는 것은 조국을 배반하는 것이라며 중국에 가서 잡혀 죽느니 자기 나라 땅에 가서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당시는 저도 비록 훔쳐먹고 얻어 먹어도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 대한 주체 사상은 투철했습니다.

저는 동생을 설득할 수가 없어 제가 중국에 가서 돈을 좀 장만해 가지고 돌아와야 겠다고 생각하고, 갖고 있던 빵 7개 중 동생에게 4개를 주며 10일 후에 다시 백암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이별이라고 생각지 않고 헤어졌는데 그 후 동생을 다시 만나지 못했고 그때 동생을 붙잡지 못한 것을 한없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기차를 옮겨 타며 중국으로 와서 한 아파트의 쓰레기 속에서 끼니를 때우고 송강하의 시장으로 갔습니다. 거기에 조선말을 하는 떡장수 할머니가 계셔 제가 북한에서 왔는데 도와 달라고 하며 따라 갔더니 예수 믿는 할머니의 집이었습니다. 그 곳에 머물며 집을 짓는 것을 도와주며 며칠을 보냈는데 할머니께서 교회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나를 신고하면 어쩌나 하는 반신반의로 따라 갔더니 옷과 신도 사 주며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처음 간 날이 97년 8월 6일인데, 중국 교회 전도사님께서는 결혼 선물로 받았다는 시계를 제게 주셨고, 처음엔 모든 것이 생소했으나 찬송가 405장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던 중 주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98년 2월, 교회에서 조선인을 멸시하는 중국인 청년들과의 마찰로 주먹질을 한 후 교회를 나와 상해로 향했습니다. 길을 몰라 교회를 찾느라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며 십자가를 찾아 상해 교회라는 곳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10분도 못되어 공안국에서 오토바이가 오더니 저를 잡아갔습니다. 대단히 큰 교회였는데 누가 신고했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조선 사람을 불러와 통역을 하며 심문을 당한 후 중국의 경제범을 가두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곳에서 중국 교회에 있을 때 암송했던 성귀도 암송하며 "천부여 의지 없어서"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송을 혼자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무리 힘을 써도 철창은 끊어지지 않았고 여기서 살아 나가는 길은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잡힌 한 여자는 북한에 가면 천대를 받고 죽을 터인데 자신은 여기서 죽기 위해 약도 먹고 몸에 지닌 철과 칼도 먹어 피를 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과 그분의 위로를 전하며, 당신도 하나님을 믿기 바란다고 했더니 자신도 믿겠다고 해서 벽을 사이에 두고 앉아 제가 배운데로 영접 기도를 시켰습니다. 그 곳에서 15일 후, 감옥에 진수성찬이 들어 왔는데 북한에 돌아가면 죽을 것이니 맛있고 진귀한 음식이나 잔뜩 먹고 가라는 죽음의 신호 같았습니다.

비행기와 기차를 갈아타며 단동 감옥으로 이송이 되었는데, 벽에는 "나는 오늘이 이 땅에서 마지막이다", "나는 내일 죽는다", "살고 싶다" 등의 애절하고 슬픈 사연의 글들이 빽빽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가고프지만 가고 싶지 않다"란 한 마디를 써넣었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교회에 다녔다는 것으로 사상이 변질된 정치범으로 몰렸고 제 인생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고 이곳까지 왔는데 살려 주세요. 다시 살아 중국의 송강하 교회에 가게 해 주신다면 제가 북한에 교회를 세우겠습니다."라고 서원 기도를 드리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 기도가 끝난 1시간 후, 저를 호송하러 신기원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4월 5일까지 저를 데리고 가야 하는데 그 날은 4월 2일로 시간이 남으니 한 호송인이 자신의 사돈집에 들러가자고 했습니다. 첫날은 족쇄를 채우고 재우더니 둘째 날은 족쇄를 풀어주어 목욕을 하게 하고, 밤낚시를 하러 나가면서도 제가 도망가지 않을 것으로 믿는 눈치인지 족쇄를 늦추어 주고 나가서 자는 척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간 후 족쇄를 풀고 도망쳐 죽을 힘을 다해 밤길을 달려 이틀만에 혜산에 도착했습니다.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산에 숨어 있다 밤이 되면 내려와 걸었는데, 오토바이를 탄 검문원에게 들켰습니다. 족쇄를 채우려는 순간에 도망을 쳐 산 속으로 숨었는데, 그들은 나를 찾느라 총까지 갖고 산으로 올라왔고 4월이라 나무에 잎도 없을 때라 숨어있는 저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일 것 같았습니다. 저는 숨어서 "하나님, 저들의 눈을 가려 못 보게 해 주세요." 를 수없이 반복했는데 저를 보지 못했는지 한참 후 떠나 버렸습니다.

송강하의 떡장수 할머니를 찾아가 하루를 보낸 후 교회에 다시 나갔습니다. 그리고 거의 밥만 얻어먹으며 양어장에서 6개월 정도 고된 일을 하다 양어장 주인이 탈북자를 인부로 쓴다는 소문이 돌자 내쫓았습니다.

마침 9월이라 농촌으로 가서 추수를 도우며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다 안산에서 오신 선교사님을 만나, 신앙심도 깊어지고 앞날의 삶에 대한 희망이 생겼습니다.

99년, 아껴 모은 돈으로 80원 짜리 녹음기를 샀는데, 한국에서 방송하는 사회 교육 방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에 듣던 탈북자들의 한국 귀순 수기를 들으며 저도 한국에 가겠다고 마음을 굳히며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선 돈을 좀 마련해 줄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5월에 중국 돈 1000원을 마련해 주셔서 밀항을 준비했습니다. 청도항에는 각국의 배가 도착해 있는데 우리말로 쓰여진 뱃머리에 옥수수를 실은 배와 철강을 실은 배가 있었습니다. 내려가서 물으니 옥수수 배가 그 날 한국에 간다고 해서 몰래 오른 후 낮과 밤을 보내었는데 태극기와 해안 경비정이 보이는 군산항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99년 5월 16일 오후, 내려가 내 신분을 밝히고 경찰서로 데려다 달라고 한 후 귀순 동기와 과정을 조사 받았고, 17일 아침 저는 TV에 나온 바싹 마른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사회 적응 훈련을 받으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남한의 모습과 생활을 배웠고, 주민등록증도 발급 받았습니다. 제가 안산에 거주하길 희망했더니 안산 제일 교회의 청년 담당 목사님께서 오셔서, 99년 10월 15일에 저는 이 교회에 교인이 되었습니다. 주거지와 직장을 정부에서 주선해 주었지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적응이 저에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신앙적인 갈등도 생겨 제가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붙든 것이 아닌가 라는 자책도 해 봅니다. 지금은 살도 붙어 육체적으로는 건강해졌으나 신앙생활, 사회 생활 모두가 미숙합니다.

하지만 죽음과 곤경 속에서 저를 건지시고 이곳에 보내 주신 주님께서 저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굳게 믿으며, 북에 있는 동포에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주어지도록 모든 교우들의 따뜻한 사랑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박철진(청년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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