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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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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18-22 칼럼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려면
담임목사 허요환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위로의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그런 말씀의 능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됩니다. 특히 예수님에게서 말씀은 그 본연의 능력이 극대화됩니다.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시는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해당 본문을 읽으며 두 가지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여인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점입니다. 주변의 지인들이 부탁을 한 것도 아니고, 여인이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아들을 잃은 여인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불쌍히 여기다’(눅7:13)는 표현은 헬라어 ‘스플랑크니조마이’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누가복음에서 총 세 번 사용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이웃에 대해 품었던 마음입니다.(눅10:33) 아버지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온 둘째 아들 탕자에 대해 품은 마음입니다.(눅15:20) 이와 같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상대방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는 긍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긍휼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귀히 여기십니다. 

 

  둘째, 긍휼의 마음을 품게 되면 과감한 행동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여인에게 딱 한 마디 하십니다. “울지 말라.” 이런 말씀이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예수님의 행동은 과격합니다. 장례 행렬을 가로막고 관에 손을 대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장례 관습에 비춰보면 상식 밖의 행동입니다. 그리고 죽은 청년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얼마나 과격한 행동입니까?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봅시다. 이런 과감함이 없으면 생명을 살릴 수 없지 않을까요? 이것 저것 따지다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긍휼의 마음을 품으시고, 과격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나 탕자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긍휼의 마음을 품으니까 과격한 행동이 나옵니다. 강도 만난 이웃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고, 탕자를 위해 잔치를 벌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려면, 긍휼과 과감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이웃의 아픔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게 되면, 과격해 보이는 행동이 따라옵니다. 바로 그때 생명의 말씀이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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