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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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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12-24 칼럼
화해의 제자도
담임목사 허요환

  우리 대부분은 대규모 전쟁의 상처나 야만적인 인종차별의 폭력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혼이나 학대, 사회적 불의, 공동체의 갈등, 가족 간의 갈등 등 나름대로 깨어짐과 분열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이 병들고 깨어진 상태라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에게는 화해가 필요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회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깨어진 세상을 고치고, 우리 서로의 관계 가운데 화해를 이루기에는, 우리의 힘이 너무 모자랍니다. 전쟁은 언제나 평화의 이름으로 시작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킵니다. 개인 간의 다툼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등하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쉬운 길을 택합니다. 법원으로 달려갑니다.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상대방을 제압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게 참된 화해나 치유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망가진 세상을 고치기에는 우리 모습이 너무 망가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인간의 경험을 벗어난 초월자를 인정해야만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의 화해는 오로지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화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 살 때 받아 누리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가르칩니다.(고후 5:17) 헌데 그 다음 말씀이 놀랍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고후5:18)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화해를 선물로 받은 것이요, 또한 세상 가운데 화해의 선물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화해의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갈등의 현장을 직시합니다. 둘째, 한 발짝 물러서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뜻을 구합니다. 그리고 탄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를 전합니다. 셋째, 희망을 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화해의 역사, 그리고 온전히 이루실 화해의 비전을 공유하며 소망을 품습니다. 마지막으로 견디어 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런 화해가 있었다고 해서 앞으로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란 뜻이 아닙니다. 다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또 다시 견뎌내면 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우리는 갈등의 현장을 직시하고, 울고 있는 자들과 함께 머물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화해의 비전을 품고, 나아가 끝까지 견디며 나아갑니다. 그게 화해의 제자도를 따르는 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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