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sanJEIL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BLOG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갑니다. 오늘이라는 시간과 지금 있는 장소가 너무도 당연해 보이지만, 이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안에 어떤 의미가 깃들어 있는지는 쉽게 인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의 전통 안에서 시간과 공간은 단지 물리적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임재와 만남의 장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고백록』에 따르면,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그 본질은 쉽게 파악되지 않습니다. 시간은 단순한 연속이나 시계의 흐름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 속에 형성되는 주관적 경험입니다. 과거는 기억 속에, 미래는 기대 속에, 현재는 직관 속에 존재합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은 시간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영원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없고, 모든 것이 영원한 현재(nunc stans) 속에 존재합니다.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공간에도 제한되지 않으며, 공간 또한 창조된 질서에 속하는 것입니다. 즉, 시간과 공간은 유한한 피조물의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유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 자신을 드러내실까요? 성경은 이에 대한 상징적 대답으로 성막과 성전을 제시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 성막을 세웁니다. 이것은 단순한 예배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심이 인간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침투한 사건을 상징합니다. 이후 예루살렘에 지어진 성전 역시 하나님의 거처로서 땅 위에 세워진 하늘의 모형이었습니다. 성막은 이동하는 백성과 함께한 하나님을, 성전은 특정한 장소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들은 모두 시간과 공간 안에서 드러나는 영원의 표지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선으로 보면,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초월성을 포기하거나 제한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로써 우리의 조건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영원한 분이 유한한 피조물의 시간과 공간 속에 임하셔서 그 자리를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현대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이러한 성막과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에게 성막과 성전은 단지 종교적 공간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의 상징입니다. 이 세상은 분열과 폭력과 불의로 가득하지만, 하나님의 집은 환대와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대안 공간입니다. 볼프는 하나님의 집이란 하나님이 세상 속에서 자신을 내어주고 거처를 마련하시는 장소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이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교제하기 위해 만든 환대의 공간이며, 이로써 세상은 변화의 가능성을 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단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거룩하게 만들고 세상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성막과 성전에 대한 이해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을 통해 더욱 깊어집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요2:19)고 하시며,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성전이 세워질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더 이상 돌로 지은 성전에 머무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인류 가운데 거하신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은 성전 중심의 예배와 희생 제사를 대체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 전환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전파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과 6장에서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신다”고 선언합니다. 이제 교회 공동체는 살아 있는 성전이며, 각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것은 단지 상징적인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실제적인 자리임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신약은 성막과 성전의 개념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집 개념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거하는 공간’ 그 자체가 되셨고, 교회는 이 새로운 임재의 확장이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과 공간의 여정은 요한계시록에서 절정을 맞이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등장하는 새 예루살렘은 더 이상 성전이 필요 없는 도시입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 때문입니다(계 21:22). 이제 시간과 공간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찬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비전을 품고 나아가는 순례자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와 공동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집으로 살아가는 연습의 자리입니다. 교회는 단지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현하는 살아 있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집인 새 예루살렘을 기다리며 오늘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거룩하게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우리가 세우는 공동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든 시간과 공간이 하나님의 집이 되길 그리고 그 복된 여정에 주님께서 함께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