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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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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짐은 가벼움이라 (마11:28~30)."
올해 5월 권사로 임직을 받고 그동안의 삶을 돌이켜 보니, 순간순간 힘들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그 때마다 그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중학생 시절, 안산에 살던 저는 친구의 전도로 광명사거리 시장 안의 개척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담임목사님의 여동생이 안산제일교회에 출석하는 청년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리고 싶어 1987년 11월. 안산제일교회 고등부에 등록을 했습니다. 그때 만난 고등부 친구들 중 12명은 믿음 안에서 삶의 교제와 나눔을 함께하며 지금도 ’71 또래‘ 나누리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고2 여름 수련회를 다녀온 후 또래 친구가 ‘어머니는 바보야’라는 책을 주며 “이 꿈에 동참할 수 있으면 나랑 결혼하자” 했는데 그 꿈이 버거워서 3년을 외면하던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하사관 군 입대 후 신우회장을 거처 군종 행정관이 되었고, 군부대 안의 예배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1993년 11월. 남태령의 수방사 충성교회에서 우리는 결혼을 했으며, 유아교육을 전공한 저는 군부대 소속 충성유치원 병아리반 교사로 함께 출.퇴근을 하였습니다. 한편 결혼식 다음 날 주일 예배 후 국내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지도를 펼쳐서 첫날 도착한 곳은 태백의 예수원, 아직도 긴 여정의 시작인 결혼의 첫 방문지가 예수원인 이유를 잘 알 수 없지만 주일 저녁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남편은 다시 ‘어머니는 바보야’ 책의 주인공들처럼 “자녀를 안 가지면 어떻냐?”고 했는데 “그래도 부모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선언하며, 우리는 3남매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군 복무 중에 신학을 공부한 남편과 저에게 주님이 원하시던 사역의 자리를 뒤로 하고, 남편은 중사로 전역 후 안산에서 태권도 도장을 열었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1년 반이 지나 300명의 단원들을 가르치는 관장이 되었습니다.
33살의 젊은 관장은 태권도협회 가입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던 스승과의 관계 갈등으로 한동안 힘들어 했었는데 그때 함께 그 고민을 나누던 친구가 물왕리 저수지 카브리해 앞 맨홀 쪽에 수영하듯 들어갔다가 겨우 나왔습니다, 그리고 ‘친구야! 내 신발이 없다’ 라는 말에 남편은 친구의 신발을 찾으러 물에 들어갔다가 무언가에 잡아 끌리듯 쑤욱 잠겼고 순간 숨이 멎을 듯한 시간에 ‘형진 아빠! 장난치지 말고 나와!’라고 했으나 결국 남편은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응급 구조대원들의 도움으로 남편의 시신은 찾았지만 순식간에 당한 사고라 어찌할 바를 몰라 한동안 오열하며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천국 환송 예식을 모두 마치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머니는 바보야’ 책의 내용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6.25 전쟁 고아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공생원 이야기. 만인의 부모가 되어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그 사명을 마음으로 늘 새기며 남편을 만난 안산제일교회의 공생원에서 지낸 지 올해로 23년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천국 가기 전, 막둥이의 돌잔치를 풍선 장식으로 손수 꾸며 주었던 그 마음을 따라 저는 풍선 아트 지도자가 되어 성전을 꾸미는 일과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찬양단 및 예배부의 안내위원 등 섬기는 일을 통해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자녀들도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 가운데 나름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회복하며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단기 선교를 통해 꿈의 조각을 찾아 장신대 기독교교육과에 입학했던 장남은 지금 호주에서 취업하여 영주권 받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둘째인 딸은 찬양 사역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수원대 성악과, 이화여대 대학원 음악학과를 마치고 조금씩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엄마 아빠의 못 이룬 목회의 꿈을 이루어달라는 엄마의 서원으로, 초등학교 내내 장래 희망이 목사였던 막내아들은 잠시 그 꿈을 접어두고 요즘 직장 생활을 하며 다양한 삶의 체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믿음 생활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지도 않고 때로는 실망을 안겨드린 적도 있지만 그 꿈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의 계획 속에 놓여 있음을 믿기에 앞으로의 삶을 더욱 기대하고 주어진 어떤 사역들도 오직 선하게 이루어 나가실 주님을 의지합니다. 내 삶의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임을 다시금 고백하며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