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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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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타국 땅, 차가운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우즈베키스탄의 네 살배기 소년이 마침내 환한 미소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갔다.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의료비와 치명적인 병마 앞에서“제발 살려달라”며 울부짖던 이방인 가족의 절규에 대한민국 사회가 응답한 결과다. 국경과 종교를 초월한 연대와 따뜻한 인도주의가 빚어낸 이 기적 같은 사연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1. 두려움 안고 찾은 낯선 땅, 절망으로 바뀐 희망
임론백(4) 군이 부모의 품에 안겨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수두증’진단을 받은 직후였다. 당시 현지 의료진으로부터“원인 파악을 위해 아이의 머리를 열어야 한다”는 소견을 듣고 극심한 두려움을 느낀 부모는, 대한민국 의료진의 뛰어난 의술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입국을 결심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주한 현실은 희망보다 가혹했다. 정밀 검사 결과 임 군의 병명은 수두증을 넘어선 ‘칸디다성 뇌척수염(Candida Encephalomyelitis)’으로 변경되었다. 뇌에서 채취한 뇌척수액에서 광범위한 염증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칸디다 계열의 곰팡이균이 검출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척추에는 물주머니가 생겨 신경을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치료의 과정은 칠흑 같이 어두운 터널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뇌와 척수의 곰팡이균 증식을 막기 위해 5~6회에 달하는 배액관 조정 수술을 견뎌야 했다. 한때 증식이 멈춘 듯하여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으나, 11월에 진행된 척추 수술 중 실시한 재검사에서 다량의 곰팡이균이 뇌와 척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이 재확인되었다. 신경 주변에 달라붙은 곰팡이균은 긁어내기조차 어려웠다. 아이는 2주에 한 번씩 전신 마취를 동반한 중증 수술을 거듭하며 극도로 쇠약해졌고, 스스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상태로 집중치료실(ICU)에서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야만 했다.
2. 2억 원의 병원비, 벼랑 끝에 선 가족
“아이의 생명이 달려있기에 치료를 멈출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곧 생명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의미했기에 귀국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러나 가족이 짊어져야 할 의료비의 무게는 이미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지 오래였다. 초기 치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 현지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친척들에게 큰돈을 빌렸지만, 매일 발생하는 집중치료실 비용과 장기적인 항진균 치료, 영구 션트 삽입 수술 비용 등으로 인해 누적된 미납 병원비만 2억 원을 훌쩍 넘겼다. 벼랑 끝에 내몰린 부모는 더 이상 어떠한 재원도 마련할 수 없는 극단적인 절망 상태에 빠졌다. 타국에서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막대한 부채라는 현실 앞에서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눈물로 기적을 바라는 일뿐이었다.
3. 기적을 쏘아 올린 연대, ‘생명’을 잇다
절망의 늪에 빠진 이 가족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먼저 사회복지법인 강물의 산하기관인 안산시외국인주민상담지원센터가 팔을 걷어붙였다. 숭고한 복지 이념과 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생명’이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안겨주기로 결단한 것이다. 재단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후원 기관을 물색했고, 그 결과 연합뉴스를 통해 1,000만 원의 후원금을 이끌어냈다. 나아가 재단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화된 한 익명의 독지가가 1억 원이라는 거액의 후원금을 흔쾌히 쾌척하면서 멈춰 섰던 치료의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제도적 장벽 앞에서도 인도주의는 빛을 발했다. 임 군의 어머니는 단기 체류 비자 신분이었기에 후원금을 수령할 본인 명의의 통장조차 개설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혔다. 이 소식을 접한 안산시외국인주민상담지원센터의 간곡한 호소에, 우리은행은 규정을 넘어선 인도주의적 차원의 결단으로 통장 개설을 전격 허용했다. 또한, 출입국 당국 역시 긍정적이고 인도주의적인 판단을 내리며 체류 자격 연장을 승인,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강제 출국에 대한 불안 없이 곁에서 온전히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환아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던 고려대 안산병원 의료진 역시 병원의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여러 차례의 수술과 헌신적인 장기 치료를 묵묵히 이어갔다.
4. 사선을 넘어 되찾은 ‘엄지척’ 미소, “한국은 제2의 고향”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하나 되어 만들어낸 촘촘한 안전망 덕분에 임론백 군의 상태는 기적처럼 호전되었다. 큰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생사를 오가던 아이는 퇴원 후 통원 치료가 가능할 정도로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몰라보게 건강해진 임 군이 웃으며 ‘엄지척’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을 받아 들고는 깜짝 놀랐다며 당시의 벅찬 감동을 회고했다. 센터를 다시 찾은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이제 통원 치료를 받을 정도로 상태가 너무 좋아졌다”며 벅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안산시외국인주민상담지원센터 관계자는 “처음 병실에서 아이를 보았을 때는 어린아이의 얼굴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낯빛이 시커멓고 입에서 피가 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며 “과연 이 아이가 살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치료를 잘 받은 덕분에 이제야 아이다운 맑은 얼굴을 되찾았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대한민국 의료진의 뛰어난 의술과 헌신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이며, 마땅히 큰 상을 받아야 할 분들”이라고 극찬했다.
건강을 회복한 임론백 군과 가족은 고향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출국을 목전에 두고 부모는 자신들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회복지법인 강물을 찾아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임론백에게 한국은 이제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회복지법인 강물이 보여준 숭고한 ‘사랑의 손길’ 덕분에 우리 아이가 생명과 건강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언론, 사회복지법인 강물, 익명의 시민, 의료진, 금융권, 그리고 정부 기관까지 한마음으로 움직였던 지난 수개월.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시작된 절망은 따뜻한 연대 속에 기적으로 피어났고, 임론백 군의 짐 가방 안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가져갈 대한민국의 벅찬 사랑과 온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